교육과정의 변화와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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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시대의 모범생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당장 필요한 것을 기능적으로 잘 수행하는 것과 둘째, 근본을 탐색하는 것이 그것이다. 산업화 시대, 70~90년대에는 첫 번째 방식이 필요했다. 연구할 것보다는 당장 선진국이 만들어 놓은 것을 빨리 따라하고 작은 개선으로 싼값에 수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 시기였다. 지금 중국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교육과정도 한 종류의 국정교과서를 빨리 외우고 열심히 반복하고 숙달해서 익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야 하는 인재들도 소수이면 되었다. 그리고 그 분야가 법률, 숫자 맞추기 수준의 재무재표, 텔렉스를 해석해서 물건을 보내는 수준의 무역업무가 주를 이루었고 공대라는 것도 외국의 기술을 번역해서 공장에서 활용할 수 있으면 되는 수준이었다. 나머지는 소위 산업의 역군이란 이름으로 저임금으로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면 되었다. on-off를 정확히 알면 되었다. 당연히 대학입시도 국정교과서를 정확하게 빨리 암기해서 푸는 학력고사로 일원화되었다. 전공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 않아서 그냥 점수에 맞추어서 장판지의 판결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면 되었다. 그래도 대학을 나오면 취업에 문제가 없었다.
판검사는 법전을 잘 외우는 자가 합격하고 공무원은 합격될 때까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합격 후에는 복지부동하면 커다란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단순 암기, 획일화에 잘 적응하는 것이 공부 잘 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혹시 철학이나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을 근본적으로 공부하도 할라치면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받았고 대단한 결단이 필요했다. 고등학교에서 ‘몇 년간 학력고사 총정리 문제집’이 주교재였다.
그러니 이 세대들은 실용적으로 빨리 시험문제 유형을 습득하고 혼자 독서실이나 고시원에서 그것을 숙달하는 것을 공부라고 여기고 있다. 창의성이라거나 뭔가를 연구하고 탐구하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고 나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리고 혹시 누군가가 뭔가를 탐구하려고 하면 좌파로 몰리거나 사상이 불순한 학생으로 오해받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냥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듯 국정교과서를 절대 진리로 신봉하고 일본 순사나 계엄군과 비슷한 이미지인 선생님의 가르침에 토를 달지 않고 그냥 암기하고 숙달하는 것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 박정희, 전두환의 시대였다.

당연히 수업은 선생님이 혼자 진도를 나가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습득하는 것은 학생 개인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뭔가를 탐구하라는 요구는 시험에 나오지 않는 허상이다. 쓸데없는 짓이다. 아무리 ‘후진 시험’이라도 동일한 종류의 시험을 통해 우열을 가리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는 이데올로기가 집단적 경험 속에서 자리잡게 된다. 분업화된 구조에서 자신이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알고 있는 유일한 공부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협업이나 공동학습과 같은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고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이었다. 친구가 놀자고 하면 그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공부법 중의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 분야의 지식은 많으나 사회적 맥락에 맞게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는 독불장군과 같은 전문가들이 양산되었고 모델이 되었다. 삼시패스 한 사람이 신화적 인물로 등극한다. 권위적인 법률가, 절차만 따지는 공무원, 불친절한 의사와 교사 등이 전문가의 모습이었다. 지금 중,고교 학생들의 부모 세대가 여기에 해당한다. 공부는 혼자 몇 가지 시험에 나올 지식을 개인적으로 인내하면서 반복해서 숙달하고 시험 점수로 보여줘야 한다는 집단 체면에서 벗어나야 한다.

산업화 시대를 넘어


이제 이런 방식의 산업화 시대가 지나갔다. 시험이란 것이 사라지고 있다. 사법고시가 로스쿨로 바뀌었다. 고시원에서 법전만 외우는 것보다는 그래도 대학원에서 판사 연습, 검사 연습, 변호사 연습, 범인 연습을 해본 법률 전문가가 더 좋다. 의사고시를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것보다 임상의 경험이 많은 의사가 더 좋다.
공무원 시험도 이제 실무형으로 바뀐다고 한다. 외무공무원은 그 나라에 대한 이해가 깊고 사명감이 있는 사람 중에서 선발해야 한다. 공기업과 대기업도 이제 블라인드 채용을 한다고 한다. 대학과 전공에 대한 기록란에 사라지고 경력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면접으로 선발한다. 이제 어떠한 직업도 사람들과 소통하고 협업하지 않으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혼자 독서실에서 공부해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협업으로 공부하고 공동으로 일을 해나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지식을 혼자의 노력과 인내로 잘 습득하는 것’을 공부잘한다고 했던 과거의 개념 대신에 이제 ‘자신의 능력을 사회적 맥락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이 큰 것’을 공부 잘 한다고 한다.
과거 방식은 무수히 많은 시간을 써가면서 절대적인 몇 개의 지식을 숙지해서 시험을 잘 보면 되었다. ‘4당5락’이 공부의 진리였다. 당연히 2시간 짜리 공부 거리를 10시간을 투자해서 반복하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시간을 쏟아부으면 1등급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2시간만에 해야할 공부 거리를 시간 늘리기 경쟁을 해가면서 청춘과 바꾼 것이다. 친구 만날 시간도 문화생활에 배당할 시간도 심지어는 가족과의 대화 시간도 모두 과잉 투자해서 단순 반복학습에 써버린 것이다.
새로운 개념의 우수한 학생은 2시간 공부거리를 2시간에 해내는 학생이다. 2시간 짜리 공부거리를 1시간에 해치우고 다른 것을 할 수 있으면 최우수가 되는 것이다. 더 이상 '한석봉'식으로 인내하며 반복해서 노가다로 얻는 점수는 우수성을 입증하지 못한다. 이런 방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십대의 시기를 이렇게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을 방조해서는 안 된다. 지식의 양과 함께 공부하는 방법도 같이 터득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사람은 시간이 있어야 효율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터득할 수 있다. 개념을 이해하고 원리를 연구할 시간이 있어야 한다. 개념을 강의로 듣고 곧바로 어마어마한 양의 문제를 풀어서 숙달하느라 시간을 다 허비하면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적용할 시간이 없어지는 것이다. 문제 유형을 익히는데 시간을 낭비해서 너무도 소중한 공부 방법을 터득할 기회를 날리는 셈이다.
똑같은 전교 1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길동이는 1년 열두 달 독서실에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범위의 기출문제와 학원에서 받은 예상문제만 숙달하면서 시간을 보내서 전교 1등이 되었다. 거정이는 시험을 앞둔 1달씩 네 달만 이런식으로 시험공부하고 나머지는 수업 열심히 듣고 자신이 궁금한 분야를 더 알아보고 체육대회도 열심히 참여하고 친구들과 많이 소통하면서도 전교 1등을 했다.과연 누가 더 우수한 학생인가? 대학에서는 누구를 뽑는 것이 합당한가? 누가 앞으로 공부를 더 잘 할 가능성이 있는가?누구나 거정이가 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라고 지목할 것이다.

이제 3개월 완성따위는 없다


우리 교육은 이제 길동이가 아니라 거정이와 같은 학생이 많이 나오도록 변화해야 한다. 거정이는 효율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수업 시간에 더 집중할 것이고 자신이 궁금한 것이 공부의 소재이지 시험에 나오는 것이 소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궁금한 것을 선생님이던 친구들이던 자연스럽게 풀어놓고 대화하고 질문하고 논의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골프나 테니스를 배울 때 두 가지 스타일의 습득 방법이 있다. 첫째 공을 먼저 만지지 않고 폼을 익히는 데 시간을 투자해서 정확한 자세에서 하나씩 원리에 맞게 습득하는 방법이 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든다. 두 번째 방법은 소위 ‘야매’로 배우는 것이다. 폼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빨리 공을 잡고 몇 가지 요령으로 실전에 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야매’는 정통으로 배우는 것에 비해 초반에는 빨라 보이나 곧 역전당하고 나중에 교정하려하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아니 다시 정통으로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할 가능성이 더 크다. 한번 익힌 ‘야매’의 방법은 습성처럼 나 자신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공부의 이치도 같다.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것에 길이 든 학생은 공식을 사용하지 않고 개념과 원리만을 이용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 이미 유형학습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유형학습만 해야 한다. 수많은 유형을 익히고 숙달해야 한다. 시간을 물쓰듯 쏟아부어서 유형을 더 많이 알고 숙달해야 한다. 다른 것을 할 겨를이 없다. 그런데 이제 대학입시나 학교 수업이 원리를 묻는 방식으로 바뀐다.
특히 대학의 면접은 이미 그런 경지에 이르러 있다. ‘3개월 완성’과 같은 어설픈 선행학습은 학생들에게 요령과 공식만으로 ‘야매’로 잘 하는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는 진통제이자 마약과 같은 것이다. 이세상에 3개월에 완성되는 것은 없다.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문제에 적용해보면서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개념의 재정립까지 된 상태에서 문제 풀이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공식을 외우는 순서를 지켜서 공부해야 한다.
이렇듯 새시대의 공부 잘 하는 학생을 선발하려고 하는 대입 선발 시스템이 학종이다. 그리고 학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학생부이다. 학생부에 나는 시험공부만 한 학생이 아니란 것이 드러나야 한다. 학생부에 나는 개념과 원리를 매우 가치있게 여긴 학생이란 것이 보여져야 한다. 학생부에 나는 고시원식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소통하면 탐구하는 방식으로 공부한 학생이란 것이 나타나야 한다. 학생부에 나는 지식을 양으로만 늘려간 것이 아니라 공부 방법과 기술도 착실히 고도화해간 학생이란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profile_이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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